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중심으로, 1923년 작가 버지니아, 1951년 주부 로라, 2001년 편집자 클라리사의 하루를 교차해 보여줍니다. 세 여성은 각기 다른 시대를 살지만 삶과 죽음, 사랑과 상실의 문제 앞에서 연결되며,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1. 줄거리
※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까지 포함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23년, 버지니아 울프의 집필과 내적 고통
영화는 1941년 우즈강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돌을 품고 강물에 몸을 던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후 시간은 192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런던 외곽 리치먼드의 자택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하는 모습이 이어집니다.
버지니아는 신경쇠약과 우울증으로 고통받고 있었고, 그녀의 남편 레너드는 버지니아의 안정을 위해 도시에서 떨어진 이곳에서 생활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버지니아는 창작에 대한 갈망과 함께 런던에서의 활기찬 삶을 그리워했습니다.
여동생 바네사가 아이들과 함께 찾아오자, 버지니아는 잠시 활기를 되찾지만, 죽은 새를 발견하고 그 장례를 치르는 순간 자신의 삶을 고통에 시달리다 끝을 맞이할 운명과 겹쳐 바라보게 됩니다. 그녀는 작품 속 인물을 죽이려는 집필의 결정을 통해 ‘죽음을 통한 삶의 의미’라는 테마를 구체화해 나갑니다.
1951년, 로라 브라운의 불안과 탈출 충동
이야기는 1950년대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전환됩니다. 로라 브라운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돌아온 남편 댄과 결혼해 둘째를 임신 중이며, 어린 아들 리치를 키우고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평범하고 안정된 중산층 가정의 주부였지만, 로라는 내적으로 깊은 공허와 불행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남편의 생일 케이크를 준비하던 중 이웃 키티가 방문해 수술에 대한 두려움과 불임 가능성을 고백하자, 로라는 키티를 위로하며 서로의 슬픔을 나눕니다. 그러나 로라는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고, 아들을 맡긴 채 호텔로 향합니다. 호텔방에서 그녀는 <댈러웨이 부인>을 읽으며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고민합니다.
결국 자살을 시도하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며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남편의 생일을 함께 축하하지만, 그녀의 불안과 억눌린 감정은 여전히 가정 안에 남아 있었습니다.
2001년, 클라리사 본의 하루와 상실
현대 뉴욕에서는 출판 편집자 클라리사 본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친구이자 옛 연인이었던 시인 리처드를 간호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리처드는 에이즈로 인해 삶이 무너져가고 있었고, 클라리사는 그를 위해 파티를 준비하지만 리처드는 오히려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듯 냉소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클라리사는 리처드를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과 함께, 자신이 과거의 사랑을 놓아버린 것에 대한 후회와 공허함을 동시에 느낍니다. 리처드는 결국 자살을 선택하고, 클라리사는 그 죽음을 마주하며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속 주인공처럼 ‘남겨진 자’의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서로의 시간을 넘어 교차하는 세 여성의 삶
영화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버지니아, 로라, 클라리사의 삶이 하나의 축을 따라 교차하며 진행됩니다. 버지니아는 집필을 통해 죽음을 삶의 일부로 인식했고, 로라는 억눌린 여성으로서 사회적 역할과 개인적 욕망 사이에서 갈등했습니다. 클라리사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존재로서 사랑과 상실을 경험하며 버지니아의 문학적 세계와 직접적으로 이어집니다.
각각의 이야기는 단절된 듯 보이지만, 결국 삶과 죽음, 사랑과 상실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공유하며 연결됩니다.
죽음과 삶을 향한 인식의 종착점
세 인물의 이야기는 결국 ‘죽음은 끝이 아니라 남겨진 자에게 삶의 의미를 각인시키는 사건’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됩니다. 버지니아는 글을 통해 죽음을 선택했고, 로라는 삶을 버리지 못했지만 가정으로부터 떠나는 결정을 내립니다. 클라리사는 죽음을 지켜보며 살아가는 자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이 세 여성의 삶은 서로의 시간과 공간을 넘어 연결되며, 인간의 실존적 고민을 관객에게 던져줍니다.
2. 개봉 당시 이슈
영화 <디 아워스>는 단순히 문학 작품을 영화화한 것이 아니라, 20세기 여성의 삶과 억압, 정신질환, 성 정체성, 그리고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시대를 넘나드는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문학적 원작의 깊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며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특히 영화는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내적 갈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관객들에게 강한 문제의식을 던졌습니다. 1920년대, 1950년대, 2000년대라는 서로 다른 시대의 여성들이 겪는 공통된 억압과 고립은 당시 여성학과 젠더 담론의 확산과도 맞물려 사회적 파급력을 크게 했습니다. 또한 영화 속에서 다뤄진 정신질환과 자살 문제는 당시에도 여전히 금기시되던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며, 우울증과 정신 건강에 대한 인식 전환을 촉발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영화는 에이즈 위기로 인한 사회적 상실을 다루며, 2000년대 초반 여전히 낙인과 편견 속에 있던 에이즈 환자와 그 주변인들의 현실을 대중에게 다시 각인시켰습니다. 이러한 배경은 단순히 한 영화의 감동을 넘어, 사회 전반의 인권, 여성, 질병, 정신건강 담론을 환기시키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3. 감독의 메시지
감독 스티븐 달드리는 <디 아워스>를 통해 ‘삶과 죽음은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세 여성의 서사를 교차시킴으로써 각 인물의 고통과 선택이 서로를 반영하게 만들었고, 이를 통해 인간 실존의 본질적인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또한 시간대를 교차 편집하는 독특한 연출로,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같은 고민을 공유하는 인물들의 연결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단순한 시대극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현재적인 문제로 영화를 받아들이게 했습니다.
4. 감상평
이 영화는 단순히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 아니라, 세 시대를 살았던 세 여성의 이야기를 교차해 보여주며 인간이 직면하는 보편적 문제를 깊이 다룹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집필과 고통, 로라 브라운의 억눌린 삶, 클라리사의 상실은 각기 다른 모습이지만 결국 같은 고민의 변주처럼 느껴집니다.
영화를 보면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때론 무겁고 힘들지만,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받았습니다. 특히 리처드의 죽음을 바라보는 클라리사의 모습은 살아남은 자가 지녀야 할 무게와 책임을 보여주며, 개인적으로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차분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작품으로, 보고 난 후에도 오랫동안 마음에 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