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온 와이어(Man on Wire, 2008): 쌍둥이 빌딩 사이, 인간의 불가능을 예술로 만든 줄타기의 실화 다큐멘터리

맨 온 와이어(Man on Wire, 2008): 쌍둥이 빌딩 사이, 인간의 불가능을 예술로 만든 줄타기의 실화 다큐멘터리
맨 온 와이어(Man on Wire, 2008):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사이에서 줄타기를 감행한 필리프 프티의 실화

1974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사이에서 줄타기를 감행한 필리프 프티의 실화를 기록한 다큐멘터리입니다. 범죄와 예술, 광기와 꿈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간의 도전을 생생하게 담아냅니다.

1. 줄거리

※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까지 포함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치과 대기실에서 시작된 운명적인 발견

1968년, 프랑스 파리. 젊은 거리 예술가 필리프 프티는 치과 진료를 기다리며 잡지를 넘기다가 뉴욕에서 건설 중인 초고층 빌딩, 세계무역센터의 기사를 발견합니다. 두 개의 빌딩이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삽화를 보는 순간, 그는 강렬한 충동을 느낍니다. 바로 저 두 빌딩 사이에 줄을 걸고 걷겠다는 상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이 계획을 “쿠데타”라고 명명하고 평생의 도전 과제로 삼습니다.

작은 무대에서 큰 꿈을 준비하다

필리프는 이미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첨탑과 시드니 하버 브리지에서 불법 줄타기를 성공시킨 전력이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은 곧 그가 세계무역센터라는 ‘불가능의 무대’를 준비하는 밑거름이 됩니다. 그는 줄타기 동료 장-루이, 연인 애니, 사진가 데이비드, 그리고 뉴욕 현지에 거주하며 건물 내부 사정을 알던 협력자 배리까지 모아 팀을 꾸립니다.

그들은 건물 도면을 확보하고, 경비 패턴을 조사하며, 장비를 어떻게 반입할지를 치밀하게 계획합니다. 실제로 수차례 뉴욕을 오가며 건물 옥상 접근 경로를 답사하고, 무게 수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철사와 균형봉을 어떻게 옮길지 연습합니다.

세계무역센터 침투 작전

1974년 8월 6일 밤, 필리프와 그의 팀은 건물 공사 관계자로 위장하고 세계무역센터에 침투합니다. 북쪽 타워와 남쪽 타워 옥상으로 나뉘어 들어간 팀은 굴착 장비실과 환기구에 숨어 경비의 눈을 피합니다. 장비를 옮기는 과정에서 체포될 뻔한 위기도 있었으나, 결국 새벽까지 두 빌딩 사이에 와이어를 설치하는 데 성공합니다.

와이어를 고정하는 방식은 극도로 위험했습니다. 두 타워를 잇기 위해 활과 낚싯줄을 이용해 최초의 얇은 줄을 날려 보내고, 그것을 차례대로 두껍고 튼튼한 줄로 교체해 최종적으로 직경 2.5cm, 길이 60m의 와이어를 완성한 것입니다.

110층 위, 인간의 발걸음

1974년 8월 7일 오전 7시 15분경. 뉴욕 시민들이 출근을 시작할 시간, 필리프는 검은 터틀넥과 검은 바지를 입고 남쪽 타워 옥상에서 와이어 위에 발을 올립니다. 발밑으로는 412m 높이의 아찔한 공중, 양옆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맨해튼 전경이 보입니다.

그는 서서히 발걸음을 옮기며 북쪽 타워로 향합니다. 그러나 단순한 이동이 아닙니다. 그는 와이어 위에서 무릎을 꿇고 관중에게 손을 흔들고, 균형봉을 내려놓은 채 등을 대고 눕기도 합니다. 심지어 와이어 위에 앉아 다리를 흔들며 대화를 나누듯 여유를 보입니다.

약 45분 동안 8차례 왕복하며 펼친 그의 공연은 아래에서 지켜보는 시민들에게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선사했습니다. 경찰은 옥상 위에서 체포 명령을 내리며 대기했지만, 그가 내려오기 전까지 어떤 방법도 쓸 수 없었습니다.

체포, 그리고 전설로 남은 하루

결국 필리프는 자발적으로 와이어에서 내려와 체포됩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영웅이자 예술가로 추앙받고 있었습니다. 법원은 그에게 가벼운 처벌로 센트럴 파크에서 아이들을 위한 공연을 명령했고, 세계무역센터 측은 평생 무료 입장권을 부여합니다.

그의 도전은 단 하루의 사건으로 끝났지만, 세계 곳곳에 기사와 사진으로 퍼져나가며 전설로 남게 됩니다. 단순한 범법자가 아니라, 불가능을 현실로 만든 예술가로 기억된 것입니다.

2. 개봉 당시 이슈

영화 <맨 온 와이어>는 단순히 한 예술가의 기록을 넘어, 인간의 도전과 자유에 대한 상징으로 사회적 파급효과를 일으켰습니다. 1974년 당시 뉴욕은 범죄율 증가, 경제적 불황으로 활기를 잃어가던 시기였는데, 필리프의 줄타기는 시민들에게 잠시나마 해방감과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또한 이 사건은 세계무역센터를 단순한 금융 건물이 아닌, 인간의 상상력이 실현될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세계무역센터가 파괴된 뒤에 이 다큐멘터리가 제작·상영되면서 관객들은 더욱 복잡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쌍둥이 빌딩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인류의 꿈과 상징이었다는 사실이 재조명되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과거의 장면들을 통해 뉴욕 시민들이 가졌던 희망을 상기시키고, 동시에 잃어버린 공간에 대한 집단적 기억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처럼 <맨 온 와이어>는 역사적 사건과 문화적 기억이 교차하는 독특한 위치에 놓이며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3. 감독의 메시지

감독 제임스 마시는 <맨 온 와이어>를 통해 단순한 ‘스릴 넘치는 사건’을 기록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현실로 만든 인간의 집념과 예술성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 영화는 범법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예술적 감동을 안긴 아이러니를 드러내며, 예술이 법과 제도의 경계를 어떻게 넘을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9·11 이후 빌딩이 사라진 현실 속에서, 이 다큐멘터리는 세계무역센터가 존재하던 시절의 찬란한 순간을 기록한 문화적 기억의 보존 장치가 되었습니다.

4. 감상평

단순히 다큐멘터리를 넘어 한 편의 서정적인 예술 작품처럼 다가왔습니다. 영화는 줄타기를 하는 과정을 스릴러처럼 긴장감 있게 보여주면서도, 그 순간이 단순한 모험이 아닌 한 인간의 삶 전체를 건 예술적 행위임을 느끼게 합니다. 특히 와이어 위에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은 삶과 죽음, 자유와 구속을 동시에 상징하는 듯했습니다.

또한 9·11 이후 사라진 세계무역센터를 스크린에서 다시 보게 되면서, 단순히 필리프의 도전만이 아니라 그 공간에 담긴 시대적 의미도 깊이 다가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무모하다’고 여길 수도 있는 행동이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예술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불가능을 꿈꾸고 그 꿈을 끝내 실행에 옮긴 인간의 힘을 보여준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