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고로 아들을 잃은 여성이 마드리드에서 과거와 마주하며 새로운 인연과 삶을 이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어머니와 여성들의 연대, 상실과 회복을 섬세하게 그려낸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대표작입니다.
1. 줄거리
※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까지 포함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들과의 일상과 갑작스러운 비극
마뉴엘라는 간호사로 일하며 아들 에스테반과 단둘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이미 떠났고, 아들은 아버지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자랐습니다. 에스테반은 글쓰기에 재능을 보였고, 어머니와의 삶을 기록하며 작가를 꿈꾸었습니다.
어느 날, 마뉴엘라와 에스테반은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보러 갑니다. 공연이 끝난 후 에스테반은 배우에게 사인을 받기 위해 극장 앞으로 뛰어나가지만, 그 순간 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게 됩니다. 어머니 마뉴엘라는 눈앞에서 아들을 잃는 충격을 겪으며 삶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과거와 마주하기 위해 떠나는 길
아들의 죽음 이후 마뉴엘라는 과거와 단절된 채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녀는 아들을 낳았을 당시의 기억과, 한때 사랑했지만 트랜스젠더로 변한 옛 남편 롤라를 떠올리며 마드리드로 향합니다. 마드리드에서 그녀는 아들과 함께 보았던 연극의 단원을 찾아다니며 일자리를 구하려 애쓰고, 잃어버린 시간을 붙잡으려는 듯 과거에 매달립니다.
이 과정에서 마뉴엘라는 연극 무대 뒤에서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게 됩니다. 화려하면서도 어딘가 상처가 남은 배우, 그 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마뉴엘라는 여전히 삶을 이어갈 이유를 찾으려 합니다.
새로운 인연들과의 만남
마드리드에서 마뉴엘라는 여장 남자인 아그라도를 만나게 됩니다. 아그라도는 거침없고 솔직한 성격으로, 마뉴엘라에게 인간적인 따뜻함을 보여주는 인물이었습니다. 아그라도를 통해 마뉴엘라는 수녀 로사를 알게 됩니다.
로사는 순수하고 선한 마음을 가진 젊은 수녀였지만, 이미 임신을 한 상태였습니다. 놀랍게도 그 아이의 아버지는 마뉴엘라의 옛 남편 롤라였습니다. 마뉴엘라는 큰 충격을 받지만, 로사가 처한 상황을 알게 되면서 그녀와 가까워지고, 결국 임신한 로사를 돕기로 결심합니다.
새로운 생명과 또 다른 상실
시간이 흐르며 로사는 아이를 출산하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마뉴엘라는 다시 한번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되었지만, 로사가 남긴 아이를 받아들입니다. 아이는 다행히 어머니가 앓던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고 건강하게 태어납니다.
마뉴엘라는 아이에게 아들의 이름과 같은 ‘에스테반’을 붙입니다. 이는 과거를 잃었지만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이어가는 그녀의 선택이었고, 동시에 아들을 향한 그리움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들의 연대와 삶의 지속
마뉴엘라는 로사의 아이를 키우면서 아들의 빈자리를 채워 나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아그라도와 같은 인물들이 그녀의 곁에서 힘이 되어주고, 상실을 겪은 여성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새로운 가족 같은 관계를 형성합니다. 영화는 이렇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어머니’가 되는 여성들의 이야기와 그 연대를 보여주며 끝을 맺습니다.
2. 개봉 당시 이슈
1999년 칸 영화제 감독상과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 평론가들은 이 영화가 단순히 모성의 드라마를 넘어서, 사회적 소수자들의 삶과 여성들의 연대를 정면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했습니다.
트랜스젠더 인물 롤라를 중심에 두고, HIV와 출산, 여성의 역할과 희생을 이야기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인 시도였습니다. 관객들은 마뉴엘라가 새로운 에스테반을 키우며 다시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깊은 감동을 받았고, 영화는 스페인 내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흥행과 비평적 성공을 동시에 거두었습니다.
페넬로페 크루즈가 연기한 로사 캐릭터는 순수함과 비극을 동시에 담아내며 큰 주목을 받았고, 알모도바르 감독은 이 작품으로 ‘여성 서사의 대가’라는 평가를 굳히게 되었습니다.
3. 감독의 메시지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이 작품을 통해 어머니라는 존재의 보편성과 위대함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어머니는 언제나 새로운 생명을 낳고 지켜내는 존재’라는 메시지를, 상실과 재탄생의 반복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남성 중심적 시각을 벗어나 여성들의 연대와 삶의 의미를 전면에 내세운 점은 알모도바르 영화 세계의 중요한 특징으로 평가받습니다. 시각적으로는 강렬한 원색과 섬세한 구도를 활용해 감정의 파동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했습니다.
4. 감상평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어머니라는 존재가 단순히 가족 안에서의 역할을 넘어 인간의 근원적인 힘이라는 점을 느끼게 됩니다. 마뉴엘라가 아들의 죽음이라는 깊은 상실을 경험하면서도 로사의 아이를 받아들이고 다시 ‘어머니’가 되는 장면은 감동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또한 아그라도와 같은 인물들이 보여주는 따뜻한 연대는 삶의 무게를 덜어주는 힘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비극 속에서도 다시 삶을 이어가려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현실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울림을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