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독특한 서사를 통해 정체성과 욕망, 사랑과 배신의 양면성을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입니다.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혼란스러운 이야기 속에서 관객은 끝까지 진실을 찾아 헤매게 됩니다.
1. 줄거리
※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까지 포함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밤, 사건의 시작
늦은 밤, 할리우드의 언덕을 따라 이어진 도로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한 대의 차가 달리고 있습니다. 운전석과 조수석에는 남자 두 명이 타고 있고, 뒷좌석에는 아름다운 여성이 앉아 있습니다.
차가 멈추자 여자는 목적지가 아니라며 당황하지만, 운전석의 남자는 총을 꺼내 들고 내리라고 명령합니다. 위기의 순간, 젊은이들이 타고 있던 차가 빠르게 달려와 충돌하며 큰 사고가 일어납니다. 운전석과 조수석에 있던 남자들은 크게 다쳤지만, 뒷좌석의 여성은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집니다.
그녀는 가까스로 도로에서 빠져나와 인근 주택가로 달아가고, 마침 여행을 떠나는 중이던 노부인의 빈집에 숨어들어 몸을 숨깁니다. 그러나 그녀는 사고의 충격으로 자신의 이름과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상태였습니다.
베티와 리타의 만남
한편, 캐나다에서 배우의 꿈을 안고 할리우드로 온 젊은 여성 베티는 영화배우 이모의 집을 돌봐주며 오디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집에 도착한 베티는 샤워 중인 낯선 여성을 발견하는데, 그녀는 바로 사고 후 숨어든 기억을 잃은 여성이었습니다. 여자는 집 안에 걸린 ‘리타 헤이워드’의 포스터를 보고 자신을 ‘리타’라고 불러달라고 말합니다. 베티는 리타의 사정을 듣고 그녀의 신원을 찾기 위해 돕기로 합니다.
두 사람은 점차 가까워지고, 단순한 동행에서 벗어나 서로에게 의지하는 관계로 발전해 나갑니다.
기억을 쫓는 두 사람의 여정
베티와 리타는 리타가 가지고 있던 단서들을 바탕으로 그녀의 정체를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식당에서 우연히 본 웨이트리스의 이름표 ‘다이앤’은 리타에게 강한 기시감을 불러일으켰고, 두 사람은 단서를 따라 여러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기억의 조각을 맞추려 합니다.
이 과정에서 베티와 리타는 서로에게 깊은 감정을 느끼며 연인과 같은 친밀한 관계로 발전합니다. 그러나 리타의 꿈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알 수 없는 단어들과 장면들은 앞으로 드러날 진실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평행하는 이야기들 – 영화감독 애덤과 꿈의 단서
영화는 베티와 리타의 이야기 사이사이에 다른 장면들을 교차로 보여줍니다.
한 장면에서는 두 남자가 식당에서 꿈에 대해 이야기하며 불안에 떨고, 다른 장면에서는 영화감독 애덤이 이탈리아 출신 거물 세력의 압력으로 원치 않는 배우를 캐스팅하라는 강요를 받습니다. 애덤은 집으로 돌아가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고, 파산 위기까지 맞이합니다.
이후 카우보이라는 신비로운 인물로부터 다시 캐스팅 지시를 받게 되는데, 이러한 장면들은 영화의 현실과 꿈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베티와 리타의 서사와 맞물려 흘러갑니다.
꿈과 현실의 전환, 진실의 드러남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영화는 점차 꿈에서 현실로 전환됩니다. 베티와 리타가 깊은 관계를 나눈 이후, 무대에서 노래하는 여인을 보고 함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오고, 곧 이어 다이앤의 집이 등장합니다.
이때 관객은 지금까지 보아온 이야기들이 베티의 꿈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현실 속 베티는 사실 ‘다이앤 셀윈’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 배우였고, 그녀는 사랑했던 연인 커밀라와의 관계가 무너진 뒤 깊은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커밀라는 감독의 연인이 되었고 주연 배우로 성공가도를 달리지만, 다이앤은 단역으로만 남게 됩니다. 배신감과 질투에 휩싸인 다이앤은 결국 청부살인을 의뢰해 커밀라를 죽이고, 환각과 환영 속에서 자신이 부른 악몽의 끝을 맞습니다.
영화는 다이앤이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충격적인 결말로 막을 내립니다.
2. 개봉 당시 이슈
개봉 당시부터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입니다. 데이비드 린치 특유의 난해한 연출과 꿈과 현실을 오가는 서사 구조는 관객들에게 강렬한 충격을 안겼습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명확한 설명을 배제하고 기묘한 장면들을 이어 붙이며, 후반부에서야 실체가 드러나는 독특한 전개 방식을 취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본 후 해석을 공유하며 토론을 이어갔고, “하나의 영화 속 두 편의 영화 같다”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나오미 왓츠는 신인 배우임에도 뛰어난 연기력으로 주목을 받으며, 이후 할리우드에서 확실한 입지를 다지게 되었습니다.
평단은 이 영화를 “21세기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꼽으며 린치 감독의 대표작으로 평가했습니다. 다만 관객들 사이에서는 난해함 때문에 호불호가 갈렸지만, 시간이 흐르며 컬트적인 지위를 얻게 되었고 지금도 해석의 여지가 무궁무진한 걸작으로 남아 있습니다.
3. 감독의 메시지
데이비드 린치 감독은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통해 할리우드의 화려함 이면에 감춰진 욕망과 좌절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꿈과 현실을 교차시키며 성공을 좇는 배우들의 희망과 절망, 그리고 인간 내면의 어두운 욕망을 드러냈습니다.
영화는 원래 TV 파일럿으로 기획되었다가 제작사가 중단하자 린치가 장편 영화로 재편집해 완성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독특한 제작 과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 덕분에 영화는 더욱 파편적이고 꿈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며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효과를 극대화했습니다.
4. 감상평
영화를 보는 내내 현실과 꿈의 경계가 흐려져 혼란을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초반에는 단순한 미스터리처럼 보이던 사건들이 중반을 넘어가며 점점 더 낯설고 불안한 분위기를 만들었고, 결국 모든 것이 꿈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날 때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베티와 리타의 관계가 현실 속 다이앤과 커밀라의 관계로 연결되는 부분은 인간의 욕망과 상실이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줬습니다. 영화는 할리우드의 화려한 이면에 감춰진 어두운 현실을 드러내며, 동시에 꿈속에서조차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불안과 욕망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다소 난해했지만 곱씹을수록 깊은 의미가 전해지는 작품이었고,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무게를 가진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