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년왕사(童年往事,The Time to Live and the Time to Die,1985):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자전적 성장 영화, 삶과 죽음을 담담히 그린 대만의 걸작

동년왕사(童年往事,The Time to Live and the Time to Die,1985):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자전적 성장 영화, 삶과 죽음을 담담히 그린 대만의 걸작
동년왕사(童年往事,The Time to Live and the Time to Die,1985):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자전적 성장 영화, 삶과 죽음을 담담히 그린 대만의 걸작

허우샤오시엔 감독이 자신의 성장기를 바탕으로 만든 자전적 영화입니다. 1940~50년대 대만 사회를 배경으로, 아버지의 죽음과 사회적 혼란 속에서 방황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담담한 시선으로 그립니다.

1. 줄거리

※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까지 포함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과 가족의 기억

영화는 허우샤오시엔 감독 자신의 목소리 내레이션으로 시작됩니다. 카메라는 감독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소년 아하(허우의 본명과 같은 배경을 공유하는 인물)의 기억을 따라갑니다. 아하의 아버지는 대만의 신주에서 살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고향인 가오슝 평산으로 가족을 데려옵니다. 아버지는 공무원으로 일했지만,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저녁이면 아하와 동생들에게 옛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늘 중국 본토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살았고, 이따금 아이들을 데리고 항구를 거닐며 대륙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고단했고, 그의 몸은 점차 쇠약해졌습니다.

아버지의 죽음과 소년의 방황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가족은 커다란 슬픔에 빠집니다. 집안의 기둥을 잃은 충격은 아하의 성장에도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아하의 어머니는 아이들을 지탱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며 반항심과 방황 속에 성장해 갔습니다.

학교에서도 그는 모범적이지 못했습니다. 축구 경기 중에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공을 발로 차 교사의 안경을 깨뜨리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아하의 행동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그 안에 억눌린 분노와 혼란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런 행동으로 인해 그는 훈계를 받고, 주변의 시선은 점점 따가워졌습니다.

전쟁의 그림자와 사회의 긴장

이 시기 대만은 중국 내전의 여파와 냉전 체제 속에 있었습니다. 마을 곳곳에는 군인들이 주둔했고, 정치적 긴장이 일상에 스며 있었습니다. 영화 속 배경으로 흐르는 전쟁 장면과 대만의 사회적 분위기는 당시 세대가 겪은 불안을 생생하게 드러냅니다.

아하는 타이완 사회에 뿌리 깊은 억압과 불안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으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그는 시험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결국 대학 입시에 실패합니다. 이는 그에게 또 한 번의 좌절이었으며, 삶의 선택지를 좁히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좌절과 성장의 경계에서

시험에 떨어진 아하는 자신이 다른 또래들과 달리 앞길을 뚜렷하게 그리지 못했음을 실감합니다. 동시에 그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방황을 이어갔습니다. 술을 마시고, 때로는 허세와 자포자기의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헌신과, 함께 살아가는 가족의 존재가 그를 붙잡아주었습니다. 학교 성적이나 사회적 성취로 평가받는 세상 속에서 그는 여전히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며 성장의 길목에 서 있었습니다.

귀향과 삶의 무상함

성인이 된 아하는 결국 대만 사회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갑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영화는 아하가 부모를 구하기 위해 험난한 길을 걸어가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성인이 되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교차시킵니다.

영화의 마지막은 소박하지만 강렬한 울림을 남깁니다. “결과적으로 돌아가는 길에 부모님이 딴 많은 무”를 사주며 올라갔다는 내레이션은, 인생의 무거움과 동시에 그 안의 소소한 따뜻함을 전합니다. 영화는 삶과 죽음, 성장과 상실을 한 개인의 기억 속에서 조용히 담아내며 끝맺습니다.

2. 개봉 당시 이슈

1985년 발표된 <동년왕사>는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대만 영화사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받습니다. 개봉 당시 이 영화는 개인의 성장과 가족사를 넘어, 대만 사회 전체의 역사적 아픔을 섬세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통한 가족의 해체와 재구성, 청소년기의 방황, 그리고 사회적 억압과 전쟁의 그림자가 얽힌 서사는 많은 관객들에게 깊은 공감을 주었습니다. 영화는 화려한 사건보다 일상의 작은 기억과 감정을 통해 삶의 본질을 드러내며, 당시 대만 신영화 운동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또한 해외 영화제에서도 주목을 받아, 허우샤오시엔을 세계적 거장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아시아 영화의 거장으로 불리며 국제 영화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3. 감독의 메시지

허우샤오시엔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삶과 죽음은 일상의 한 부분”이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는 개인의 자전적 이야기를 빌려, 전후 대만 사회의 불안과 세대의 상실을 조용히 담아냈습니다. 장황한 설명을 배제하고, 낮은 카메라 앵글과 정적인 롱테이크를 통해 관객이 인물들의 삶 속에 함께 앉아 있는 듯한 체험을 하게 합니다. 이러한 연출은 허우샤오시엔 영화 세계의 출발점이자, 대만 신영화의 미학을 보여주는 대표적 특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4. 감상평

이 영화를 보며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기억의 힘’이었습니다. 영화 속 소년 아하는 아버지의 죽음과 사회적 불안을 온몸으로 겪으며 성장합니다. 하지만 감독은 이를 비극적으로 과장하지 않고, 오히려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냅니다. 저는 이런 점에서 더욱 큰 울림을 받았습니다. 누구나 어린 시절 부모와의 기억, 사소한 사건, 그리고 당시 사회 분위기가 평생의 가치관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영화는 화려한 드라마가 아니라 일상의 작은 순간들을 모아 인생의 무게를 보여주는데, 그 진솔한 방식이 마음을 울렸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제 어린 시절과 부모님에 대한 기억도 자연스레 떠올라, 삶의 의미를 곱씹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