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밀밀

영화는 1980년대 후반 홍콩을 배경으로, 중국 본토 출신 청년과 여성이 낯선 도시에서 겪는 사랑과 좌절, 재회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시대적 배경과 함께 이민자들의 꿈과 현실, 그리고 인간적인 관계의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낸 드라마입니다.

1.줄거리

※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까지 포함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낯선 땅, 홍콩의 첫인상

1986년, 소군은 중국 톈진에서 홍콩으로 홀로 건너옵니다.

좁은 배낭 하나만 멘 채, 바닷바람에 휘날리는 머리를 손으로 정리하며 처음 발을 내딛은 홍콩. 뱃길을 따라 붉은 조명이 흐드러지게 켜진 항구, 수많은 이민자들 틈에서 소군은 깊은 숨을 내쉽니다. 그는 약혼녀 소정과의 결혼을 꿈꾸며, 돈을 모으기 위한 결심으로 이 땅에 도착한 것입니다.

그가 정착한 곳은 몽콕의 허름한 기숙사 건물. 좁은 복도에 늘어선 세면대와 공용 주방, 종이처럼 얇은 벽 너머로 들려오는 타지 사람들의 사투리. 새로운 환경은 그에게 위압적으로 다가옵니다.

처음 며칠, 그는 단순노동을 찾아 건설 현장을 전전하며 체력과 인내를 시험받습니다.

이방인들 사이에서 피어난 유대

그러던 어느 날, 기숙사 복도에서 우연히 만난 여성이 바로 ‘이교’입니다.

광저우 출신의 이교는 도시적인 외모에 또렷한 화장, 당당한 걸음걸이로 첫인상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그녀는 홍콩에서 성공해 돈을 벌겠다는 강한 욕망을 가진 인물로, 초반에는 소군의 수줍은 태도를 유치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은 식사와 빨래, 이주 노동자 센터 수업 등 일상을 함께 하며 점차 가까워집니다. 기숙사 옥상에서 함께 마신 맥주, 야경을 바라보며 나눈 고향 이야기는 둘 사이의 거리를 좁혀놓습니다.

이교는 소군의 묵묵한 배려에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소군 역시 이교의 강인함 속 숨겨진 외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등려군 앨범, 실패로 끝난 첫 도전

이교는 한탕을 노립니다.

대만의 국민가수 등려군의 해적판 테이프를 대량으로 구매해 홍콩에서 팔아보겠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녀는 낡은 워크맨으로 등려군의 곡을 들으며, “본토 사람들은 분명히 살 거야”라고 자신합니다.

소군은 그녀의 사업을 도우며 시장 조사에 나섭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홍콩의 청년들은 알란 탐과 장국영에 열광하고 있었고, 등려군은 ‘촌스럽다’는 반응이 대다수였습니다. 본토 출신 이민자들조차 “촌티 날까봐 못 사겠어”라며 외면합니다.

밤늦게까지 남은 테이프를 껴안고 앉아 있던 이교는 결국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립니다.

소군은 묵묵히 그녀 옆에 앉아 함께 남은 테이프를 정리하며 위로합니다. 두 사람은 다시 한번 서로의 진심에 다가서지만, 이교는 다시 일어나야 한다며 눈물을 닦고 일어섭니다.

주식시장 폭락과 절망의 나락

이교는 마지막 남은 자금을 모아 주식에 투자합니다. 이번에는 ‘진짜 기회’라며, 한 탕으로 인생을 바꿔보겠다는 일념으로 증권사로 향합니다.

소군은 그녀의 과감함에 불안을 느끼지만 말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1987년 10월, 홍콩 증시 대폭락이 터지며 그녀의 자산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공중전화 앞에서 울먹이며 통장 잔액을 확인하는 장면, 텅 빈 계좌를 보고 바닥에 주저앉은 이교의 모습은 말없이 절망을 보여줍니다.

생활비마저 바닥나고, 선택지는 많지 않습니다.

결국 이교는 안마시술소에서 일하기 시작합니다. 푸석해진 얼굴, 진한 화장을 억지로 올린 채 손님을 응대하는 그녀의 모습은 비참하지만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으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소군은 그녀의 상황을 알고도 떠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교는 “너 같은 순진한 사람, 나 같은 여자 옆에 있어봤자 망가질 뿐이야”라며 그를 밀어냅니다. 그녀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사랑을 외면합니다.

떠남, 그리고 운명처럼 찾아온 재회

어느 날, 이교는 이민자 조직의 보스 ‘표형’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돈과 권력, 안정적인 삶을 제안합니다. 화려한 레스토랑에서 그녀에게 건넨 다이아몬드 목걸이, 고급 아파트의 야경은 이교에게 다시 한 번의 유혹을 안깁니다.

결국, 이교는 아무 말 없이 소군의 곁을 떠납니다. 텅 빈 방, 식지 않은 국과 밥상, 돌아오지 않는 전화. 소군은 그녀를 찾아다니지만, 그녀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군은 그녀의 메모지에 “안녕”이라는 한 마디만 남깁니다.

시간은 흘러 1990년대 초. 소군은 홍콩에 남아 약혼녀 소정과의 삶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엔 이교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뉴욕. 번화한 거리에서 서로 스쳐 지나간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칩니다.

카페에서 마주 앉은 그들은 차분한 목소리로 지난날을 이야기합니다. 더 이상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지만, 그들의 눈빛은 여전히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영화는 두 사람이 과거의 상처를 받아들이고, 조용한 재회의 미소 속에서 끝을 맺습니다.

2. 개봉 당시 이슈

이 영화는 홍콩 반환 전후의 불안정한 시대 분위기와 이민자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특히 1987년 주식시장 폭락과 같은 실존 사건을 배경으로 삼아, 당대 관객들에게 현실적인 공감을 이끌어냈습니다. 영화에 삽입된 등려군의 음악은 향수를 자극하며 세대 간의 감정을 이어주는 장치로 활용되었고, ‘잊혀진 사랑’이라는 테마는 중장년층 관객들의 높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또한 주연 배우들의 섬세한 감정 연기가 호평을 받으며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현실적이면서도 시적인 작품’으로 평가되었습니다.

3. 감독의 메시지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현실 속에서 피어난 사랑은 때때로 꿈보다 가혹하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상과 현실, 사랑과 야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들을 통해 삶의 선택과 그 대가를 성찰하게 합니다.

도시의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인물들을 통해, 정체성과 소속감, 그리고 진정한 인간적 연결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당시 홍콩의 시대상과 이민자의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한 연출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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